21세기 디자이너의 필수덕목- 창업가 정신2016-12-21


21세기 디자이너의 필수 덕목 [벤처 창업] #1 창업가 정신
자신의 사업을 일으켜 크게 성공한 사람을 보면 누구나 비슷한 질문을 떠올릴 것이다. ‘도대체 저 사람의 비결은 무엇일까?’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 점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창업가에 대한 연구와 논쟁은 2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앙트르프르뇌르십entrepreneurship’이라는 단어다. 창업가 정신, 혹은 기업가 정신 등으로 번역하는 이 단어는 한마디로 훌륭한 창업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자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업가 정신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정의할까? 또 2014년 창업가 정신의 조건은 무엇일까?
창업가 정신의 정의
‘정신’이라는 단어 때문에 무언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창업가 정신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동 양식이다. 대표적 예가 스티브 잡스다. 그는 남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업가로서 자신의 철학을 추구한 끝에 새로운 산업과 문화를 창조했다. 너무나 유명해진 스탠퍼드 대학 졸업 연설 이후 “항상 열망하고, 항상 어리석어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스티브 잡스의 조언은 그를 롤모델로 삼은 이들에게 일종의 바이블이 됐다. 열망하라는 것은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언제나 도전하라는 의미이며, 어리석게 행동하라는 것은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다. 창업가 정신이라는 단어는 18세기경 프랑스 경제학자 리샤르 캉티용(Richard De Cantillon)이 ‘앙트르프르뇌르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소개됐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창업가 정신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렸는데, 그 핵심은 언제나 일맥상통하고 있다. 특히 1934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내린 정의는 간단하지만 80년이 지난 이 시대에도 큰 울림을 준다.
 
1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 “새로운 결합을 수행하는 것.”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언제나 변화를 탐색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변화를 하나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 
제프리 티몬스(Jeffrey Timmons)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가치 있는 것을 이루어내는 인간적이고 창조적인 행동.” 
 



Interview -
이나리 은행권 청년 창업 재단(D.CAMP) 기업가 정신 센터장 
“위대한 창업가들은 이미 예전부터 디자인적 사고를 해왔다.” 



 
과거와 다른 21세기 창업가 정신의 특징은 무엇일까?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로 더 이상 창업에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제품 생산보다는 새로 운 사고방식 제안이 창업가의 필수 역량이 되었다. 사물 인터넷, 웨어러블 등 요즘 화제가 되는 기술은 사실 공유, 개방형 혁신, 협업 등의 21세기 가치가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신기술 자체보다 밑바탕에 깔린 시대정신을 비즈니스에 접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시대의 창업가 정신이 과거와 비교해 특별히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훌륭한 17세기의 창업가는 현대 창업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래서 나는 뛰어난 창업가를 현대의 영웅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영웅은 어느 시대든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남들이 보지 못한 기회를 포착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리며, 뛰어난 실행력과 혁신적 사고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 

창업가 정신과 디자인적 사고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란 문제 해결 중심의 방법론이다. 창업 또한 ‘어떤 문제를 어떻게해결할 것인가?’하는 물음에서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직관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어느 순간 A에서 F로 도약하는 것이다. 성공한 창업가들은 보통 운이 좋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운은 누구한테나 오게 마련인데 그것을 포착하는 것은 결국 직관의 힘이다. 문제를 사회, 경제, 문화, 역사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볼 수 있는 통찰력도 중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위대한 창업가들은 이미 예전부터 디자인적 사고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다소 경시되었던 직관이라는 가치가 시대의 필요에 따라 부각되었을 뿐이지, 디자인적 사고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창업가 정신을 향상시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뛰어난 창업가들은 하나같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이야기한다. 학력이 보잘것없어도 마찬가지다. 꼭 양질의 고급 독서일 필요는 없다.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창업가에게는 아무도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의하여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필수다. 이는 곧 사업 전략이기도 한데, 이처럼 무엇이 문제인지 포착하는 능력은 많은 독서와 경험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에게 창업가 정신의 관점에서 조언을 부탁한다. 
창업을 꿈꾸든, 조직 속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시도하든, 자신이 시대정신을 잘 수용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창업가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디자이너에게도 필요한 시대다. 이 시대의 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디자인의 복제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심지어 3D 프린터까지 등장하지 않았는가? 협업 능력도 길러야 한다. 외국에서는 1인 창업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혼자 창업한 회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 두 사람보다는 다섯 사람의 역량이 큰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디자인은 근본적으로 설득과 대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는 점점 더 그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나리
<동아일보>,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중앙일보> 논설 위원, 경제 부문 재계•IT 팀장, 주말 섹션 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청년 창업가에 대한 금융 지원과 생태계 조성을 통해 은행 연합회 20개 사원 기관이 참여해 설립한 은행권 청년 창업 재단(D.CAMP)에서 기업가 정신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 테크노 파크 이사, 서울시 산•학•연 정책 위원회 및 공유 촉진 위원회 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다르게 살겠다> <열정과 결핍> <쎄씨봉 시대>(조영남 공저) <1인 미디어 기획에서 제작까지>(안수찬 외 공저) 등이 있다. 

창업가적 행동 양상 
성공적인 창업가들의 행동 양상과 기업 운영 방식은 기존과 다른 점이 있을까? 혁신적인 창업가와 기업을 오래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하워드 스티븐슨(Howard H. Stevenson)은 창업가를 남들과 다르게 만드는 행동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유모차 시장을 디자인으로 개척하다 - 부가부 Bugaboo
부가부 라이프스타일
부가부는 다양한 생활 방식을 가진 사용자 모두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디자인한다.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아빠가 몰아도 어색하지 않은 유모차는 없을까? 숲 속 오솔길이나 해변의 모래사장에서도 끌 수 있는 유모차는? 지금은 다양한 스타일과 기능의 유모차가 흔해졌지만, 부가부 창업자 막스 바렌브뤼흐(Max Barenbrug)가 디자인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유모차는 부모들의 골칫덩이였다. 기존 유모차는 세련된 디자인은커녕 빈약한 성능으로 사람의 행동과 움직임을 제한했다. 하지만 바렌브뤼흐가 처음부터 유모차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이동성’ 자체에 있었다. “이동의 자유는 말할 수 있는 자유보다도 먼저입니다. 하지만 이동 기기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디자인하기에 매우 복잡합니다. 동시에 사용자의 여행을 쉽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하지요.”

단순히 더 나은 유모차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는 이동 기기를 만들겠다는 결심이 있었기에 그의 제품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었다. 부가부에서 자사 제품을 ‘유모차’가 아니라 ‘스트롤러(stroller)’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통있는 고급 유모차 브랜드는 이미 존재했지만 기술과 디자인 혁신을 중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부가부는 독보적이었다. 분명히 필요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부가부 스트롤러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듈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시트나 햇빛 가리개가 분리되는 유모차 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품의 사용자를 아이가 아니라 부모로 설정한 것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기존 유모차는 키 큰 네덜란드 남자들이 끌기에 너무 낮았는데, 부가부는 높낮이뿐 아니라 방향도 조절할 수 있는 핸들을 선보였다. 뛰어난 주행성과 조작성은 물론 기본이었다.

이러한 부가부의 혁신은 2010년 선보인 동키(Donkey)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인용에서 2인용으로 자유로운 전환이 가능한 스트롤러는 지금도 부가부 제품이 유일하다. 부가부에서 디자인과 기술은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형태와 기능이 서로를 완벽하게 지지하기 때문이다. 기능적인 제품인데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면 그 아이디어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바렌브뤼흐의 철학이다. 기술도 뛰어나지만 부가부가 디자인 중심적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무엇보다 모든 제품이 사용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유모차를 ‘아기를 태우는 물건’으로만 생각했다면 산길이나 눈밭에서도 이동 가능한 부가부의 스트롤러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모차 때문에 원하는 곳에 갈 수도 없고, 옷차림에까지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어찌 디자인 제품이라 할 수 있을까? 부가부의 혁신은 사용자의 필요와 욕구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디자인의 기본 원칙을 지켰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바렌브뤼흐는 무엇보다 디자이너인 동시에 창업가이기도 했다. 그가 대학 졸업 후 부가부 초기 디자인을 유모차 기업에 팔려고 했을 때 그것을 사려고 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그는 다른 구매자를 찾아나서는 대신 디자인을 더 다듬고 발전시켜 직접 회사를 설립했다. 이 결정적 선택이 없었다면 부가부의 모든 혁신은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1 동키(Donkey) 부가부 기술 혁신을 대표하는 모델로, 1인용에서 2인용으로의 전환이 자유롭다. 연령대가 다른 아이들을 태우기에 편리하며, 한쪽을 장바구니 등 다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다.
2 카멜레온(Cameleon) 부가부의 대표모델로, 도심은 물론 숲 속이나 모래, 눈길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3 Bug.1 막스 바렌브뤼흐가 졸업 작품으로 디자인한 도시형 다용도 유모차. 부가부 스트롤러의 모태가 됐다.
 


Interview -
막스 바렌브뤼흐 부가부 창업자,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
“기존 유모차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만들었다.”


졸업 프로젝트로 유모차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언가 색다르고 특별한 제품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한 시장을 찾기 시작 했는데, 당시 유모차 디자인이 엉망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촌스러운 컬러, 얄팍한 바퀴와 곰돌이 프린트가 전부였다. 네덜란드 남자들이 사용하기에는 높이도 너무 낮아 보기에도 어색했다. 부모들은 유모차 때문에 행동이나이동에도 큰 방해를 받았다.

부가부의 디자인은 어떤 점에서 달랐나?
졸업 작품으로 디자인한 초기 유모차는 도심과 공원, 심지어 자전거와도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밀면서 조깅을 하거나 하이킹을 갈 수도 있었다. 사실 시장에 비해 너무 앞서 나간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양산 제품의 모듈 방식이나 사용자를 위한 다양한 기능은 당시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디자인이 획기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용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이었다. 이는 기존 유모차를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부가부의 디자인 과정이 궁금하다.
부가부에서는 디자인이 모든 제품의 콘셉트와 방향을 결정한다. 디자인이 진행되는 동안 형태와 기능이 균형을 이루며 끊임없이 시험을 거친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기술적인 면을 해결한 후 나중에 디자인으로 옷을 입히려고 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 우리는 디자인 과정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있으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때로 아이디어를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세상을 바꿀 만한 디자인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

부가부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
부가부는 매년 신제품을 내놓는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완벽한 제품만 선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길게는 수년의 시간을 투자한다. 우리는 디자인을 이유로 기능을 포기하지 않으며, 반대로 기능을 위해 디자인을 훼손하는 것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제품에 필요한 기능과 기술이 디자인에 모두 녹아들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 부가부의 디자인 철학이다.

디자이너로서 좋은 창업가의 조건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창의성은 어느 기업에서든 가장 중요한 요소다. 벤츠(Benz)를 설립한 칼 벤츠는 자신의 마차에 모터를 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는 아무 리더나 떠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모든 것은 남들과 다른 생각에서 시작된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고객에게 먼저 무엇을 제안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후에는 제품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지, 그것이 기업 이익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예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곧 좋은 기업가, 좋은 창업가의 자질이 있는 것이다.


기업 정보
본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직원 약 1000명,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약 50명
비전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모빌리티(mobility) 브랜드


창업자 정보
막스 바렌브뤼흐
1994년 이동성을 주제로 한 시티 바이크(City Bike)와 도시형 다용도 유모차로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이 작품들을 모태로 제품의 인체 공학적 측면을 조언했던 의사이자 사업가인 에두아드 자넨과 함께 1996년 부가부를 설립했다.
부가부의 첫 양산 모델인 ‘부가부 클래식’은 1999년 출시됐다.
디자이너라는 약점으로 성공했다 - 에어비앤비 Airbnb

세계 곳곳의 에어비앤비 숙소를 그대로 재현한 에어비앤비 본사 사무실 전경.

민박 중개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에어비앤비는 2008년 설립됐다. 에어비앤비에는 현재 192개 국가 60만 곳 이상의 숙소가 등록되어 있는데 지난 12월 31일 하루 동안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사람이 25만 명에 달했을 정도다. 지난해 매출은 2억 5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의 공동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와 조 게비아(Joe Gebbia), 그리고 네이선 블레차르지크(Nathan Blecharczyk)가 실리콘 밸리를 방문했을 때 이들의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투자자들이 내세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남의 집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것과, 이들이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네이선은 하버드 출신 엔지니어였지만, 브라이언과 조는 당시 막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을 졸업한 터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에어비앤비가 성공한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에어비앤비가 호텔 중심의 숙박 생태계를 뒤흔들 만한 잠재성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현재 100억 달러 이상으로 점쳐지는 에어비앤비의 기업 가치는 하얏트 호텔 체인의 기업 가치보다도 높다. 핵심은 여행 기간 동안 ‘남의 집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에어비앤비에서 방을 예약하는 고객은 대부분 휴가를 맞은 사람들이다. 호텔 수익의 대부분이 비즈니스 출장객들에게서 발생하는 것과는 다르다. 여행지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원했다. 아침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이런저런 궁금증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현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여행자들의 이런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에어비앤비는 숙박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소라를 모티브로 한 멕시코의 숙소.

한편 에어비앤비의 세 창업자가 한정판 시리얼까지 만들어 내다 팔며 고전하던 창업 초기,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은 샌프란시스코 기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와이- 콤비네이터(Y-Combinator)를 이끄는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었다. 그는 초기 투자금 2만 달러로 에어비앤비의 숨통을 틔워줬지만, 창업자들에게 진정한 수확은 훌륭한 멘토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 100만 명보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 100명이 있는 게 낫다는 조언을 뼛속 깊이 새겼죠.” 브라이언 체스키의 말이다. 이는 그대로 에어비앤비의 경영 철학이 됐다. 한 사람을 완벽히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을 열 배, 스무 배로 확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다수의 고객에게 잠깐의 만족을 주고, 그 결과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에어비앤비는 한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만들고, 이를 확대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 중심의 경영이 가능했던 것을 두고 브라이언은 자신들이 디자이너 출신이었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공감과 창의성을 최고 가치로 두는 회사이기에, 디자이너는 에어비앤비와 같은 회사를 이끌기에 완벽한 사람이라는 것. 하지만 창업자들이 에어비앤비를 ‘실리콘 밸리의 다른 어떤 기업보다디자인 중심적인’ 회사로 꼽는 것은 감정이입이라는 추상적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의 모든 결정, 즉 고용부터 사무실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이 이끌어간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무언가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스타일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을 위한 완벽한 시스템을 에어비엔비에서는 ‘끝에서 끝까지의 서비스 디자인(endto- end service design system)’이라 일컫는다. 


 
1 샌프란시스코 에어비앤비 본사.
프랑스의 빈티지 캐러밴 숙소.


이의 핵심은 에어비앤비 고객의 사용자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고객에게 완벽한 여행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진 후, 고객이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온 후까지의 모든 단계를 서비스 디자인 영역으로 본다. 이 시스템을 구체화하는 것은 에어비앤비가 ‘백설공주’라고 이름 붙인 방법을 통해서다.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백설공주는 월트 디즈니가 스토리보드를 이용해 만든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에어비앤비는 이를 여행에 적용한 것이다. 완벽한 여행을 구성하는 요소를 스토리보드화해 디자인하는데, 이 ‘백설공주’ 방법은 회사를 위한 사소한 결정에도 모두 사용한다. 사용자 경험을 이미지로 구체화한 뒤 문제점을 찾는 이 방식은 에어비앤비에 방을 내놓는 호스트를 위한 서비스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됐다. 

 
1 ‘아시아 최고의 디자인’ 카테고리에 꼽힌 중국 상하이 숙소.
샌프란시스코 만을 바라보는 나무 집 숙소.
 
이 방법을 통해 에어비앤비는 ‘사진 찍기’ 단계가 호스트들에게 큰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의 방을 내놓으려면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하는데, 어떤 이용자들에게는 이것이 상당한 난관이었던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4000명이 넘는 전문 사진가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클릭 한 번이면 이들 사진가가 집으로 직접 방문해 사진을 찍어주는데, 물론 요금은 무료다. 덕분에 카메라 사용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나 노인들이 더욱 편리하게 에어비앤비 호스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에어비앤비의 창업자들이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에 능숙한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면 고려하지 못했을 지점이다. 

학교에서는 회사를 운영하는 CEO에게 어떻게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을지 항상 논의하곤 했지만, 브라이언은 ‘왜 디자이너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 안 되지?’라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숙박 생태계에 새로운 흐름을 창조한 에어비앤비의 창업자들은 분명 전통적인 창업가 정신에도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만약 ‘디자인 창업가’라는 말이 새로 만들어진다면, 이들은 분명 리스트의 맨 윗줄에 오를 것이다.


창업자 정보
브라이언 체스키 1981년생.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회화와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 에어비앤비 CEO로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조 게비아 1981년생.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최고 제품 책임자(CPO)로 에어비앤비의 모든 디자인과 서비스를 책임진다.
네이선 블레차르지크 1983년생. 하버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최고 기술책임자(CTO)로 에어비앤비의 모든 기술 전략과 엔지니어 팀을 관리한다.


회사 정보
에어비앤비 2007년 10월,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가 샌프란시스코의 대규모 디자인 콘퍼런스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아파트의 남는 방과 공기 침대를 임대해준 것에서 출발했다.
회사명 에어비앤비(Airbnb)는 공기 침대(air bed)와 아침 식사(breakfast)를 뜻한다.
본사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직원 약 800명
비전 여행하며 세상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창업가에게도 디자인 감각은 필수다 - 슈퍼잼 Superjam
1 슈퍼잼 라벨 디자인.
슈퍼잼 패키지 디자인. 오리지널 콘셉트를 바탕으로 한국 시장에 맞도록 슈퍼잼 코리아에서 리디자인했다.

슈퍼잼 이야기는 2003년 어느 날 16세이던 창업자 프레이저 도허티(Fraser Doherty)가 할머니 댁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설탕을 전혀 쓰지 않고 잼을 만드는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본 그는 할머니를 졸라 조리법을 전수받았고, 곧 자신이 만든 잼을 이웃집에 팔기 시작했다. 도허티는 어린 나이부터 창업가의 자질을 발휘한 케이스다. 특히 젊은 창업가들이 IT 분야에 치중된 것에 반해, 잼이라는 전통적이고 다소 진부하기까지 한 소재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처음 돈을 번 것은 10세 때였습니다. 케이크를 구워 선생님들에게 팔았는데, 그 돈을 가장 좋아하는 자선 단체 그린피스에 보냈죠.” 창업 과정에서 난관은 일찍 찾아왔다. 주문량이 점점 늘어 집에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되자 도허티는 공장을 찾아 나섰는데, 시장이 오래 정체된 탓에 잼 공장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높은 설탕 함유량으로 잼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도허티는 오히려 여기서 슈퍼잼의 가능성을 봤다. 건강하고 현대적이며, 차별화된 잼을 선보이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한 그는 영국의 고급 슈퍼마켓 체인 이트로즈(Waitrose) 입점을 목표로 삼았다. 웨이트로즈는 슈퍼잼 아이디어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아직 공장계약, 다양한 레시피 개발 등 많은 난관이 남아 있었다. 특히 라벨과 패키지가 문제였다. 

 
3, 4 슈퍼잼 패키지 디자인. 오리지널 콘셉트를 바탕으로 한국 시장에 맞도록 슈퍼잼 코리아에서 리디자인했다
5 ‘슈퍼 히어로’를 주제로 한 초기 디자인

도허티는 처음부터 브랜드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선반의 수많은 제품 사이에서 소비자가 슈퍼잼을 집어 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아님에도 디자인이 제품에 어떻게 차별성을 부여하는지 직감적으로 이해했던 셈이다. 그래서 슈퍼잼 론칭 과정에서도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처음 선보인 ‘슈퍼 히어로’ 콘셉트는 웨이트로즈에서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디자인은 눈요기가 아니며,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바로 이때였다. 디자이너와 함께 콘셉트를 구상하는 동안 그는 슈퍼잼의 정체성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했다고 한다. 100% 과일로 만들었다는 가장 큰 특징을 군더더기 없이 고스란히 반영한 시안이 나오고서야 웨이트로즈는 입점을 허락했다. 도허티는 강연을 할 때마다 디자인 때문에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웨이트로즈 입점 후 5년이 흐른 2012년, 슈퍼잼은 연 매출 140억 원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도허티는 단순한 잼 생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잼을 도구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2007년 시작한 ‘티 파티’가 대표적이다. 차와 쿠키를 즐기는 영국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연평균 100차례 이상 전국 양로원을 방문하여 노인들에게 빵과 잼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환경과 꿀벌 보호를 목표로 도시 양봉을 통해 얻은 꿀로 만든 ‘슈퍼허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고유의 잼 만드는 비법을 가진 영국 가정은 아마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당당하게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전 세계 2000여 개 매장에서 연간 100만 병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잼 브랜드로 키워낸 사람은 프레이저 도허티밖에 없었다.



 


Interview - 

프레이저 도허티 슈퍼잼 창업자
“슈퍼잼의 비전을 이해하는 디자이너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패키지 디자인이 슈퍼잼에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작은 제품이 단 몇 초 만에 시선을 끌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3만 개가 넘는 제품이 가득 찬 정신없는 슈퍼마켓 한가운데서 말이다. 슈퍼잼은 마켓에서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동시에 집에서도 돋보여야 했다. 무조건 강렬하거나 요란하기보다는 부엌에도 어울릴 만큼 충분히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특히 슈퍼잼처럼 마케팅이나 광고예산이 많지 않은 작은 브랜드의 경우 패키지 디자인은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이 제품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패키지 디자인을 구상하는 동안 브랜드의 정체성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있다.
처음에 나는 패키지 디자인이 사람들을 웃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웃게 만들면 그 제품을 구입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슈퍼잼이라는 이름에서 만화 콘셉트를 떠올렸다. 나는 ‘잼보이’라는 슈퍼 히어로였던 셈이다. 의상을 제작할 계획까지 세웠다. 나는 슈퍼잼이 재미있고 유쾌한 브랜드라는 것, 기존의 잼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웨이트로즈 관계자들은 패키지 디자인이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패키지란 그 제품을 왜 사야만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최종 디자인 콘셉트에서는 어떤 점을 고려했나? 
슈퍼 히어로 외에도 흑백 사진을 이용한 아이디어,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 등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했는데, 그중 어느 것도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충분치 않았다. 슈퍼잼은 슈퍼마켓 선반의 다른 ‘전통적인’스타일 잼들과는 달라야 했다. 천연 재료로 만든 만큼 패키지 또한 깨끗하고 심플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점들을 정리하자 그제야 모든 것이 쉽고 명확해졌다. 나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업 기회를 언제나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슈퍼잼의 비전과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디자이너를 만난 것은 가장 큰 행운이었다.

회사 정보
본사 호주, 한국, 일본, 덴마크, 폴란드 등 세계적으로 5개 지사가 있다.
도허티는 현재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활동 중이다.
비전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잼 브랜드

창업자 정보
프레이저 도허티 1988년생.
16세 때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잼을 이웃에 판매하기 시작한 이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사업에 몰두했다.
2007년 영국 웨이트로즈 마켓에 입점하며 슈퍼잼을 정식 론칭했다.

 
[출처]
월간디자인 (2014년 6월호)  | 기자/에디터 : 최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