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zeen 오피니언] 디자인 거품의 시대2016-12-21


[오피니언] 디자인의 영역이 모든 창작 활동을 아우를 정도로 확장되고 디자이너들이 세상의 온갖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는 작금의 상황에서, 루카스 페어베이는 디자인이 도저히 이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디자인은 더 이상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만 해도 디자인이 무엇인지, 어떤 목적에 복무하는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유럽 본토에서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드물게 사용될 뿐이었다. 당시 디자인 작업은 ‘포름헤빙(vormgeving)’을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형태를 부여하는’ 일을 의미했다. 내가 졸업할 때 받은 학위 증서의 어디에도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데, 바로 그 학교가 이제는 디자인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전에 ‘디자인’은 스타일 상의 위치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알레시는 ‘디자인’ 커피포트를 생산하였으며, 디터 람스는 브라운사의 ‘디자인’ 전자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미술관 매장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특수한 제품들, 대체로 모더니즘적인 외형의 제품들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였던 것이다. 당시에 디자인은 여전히 형용사로 사용될 뿐, 동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디자인이며 어디를 가나 디자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앵글로색슨의 세계에서는 디자인이 모든 종류의 창작 분야를 아우르는 용어였다. 이후 이러한 정의가 대중성을 얻게 되었고, 이제는 디자인이라는 거대한 우산이 모든 창작 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모든 것이 디자인이며, 어디를 가나 디자인이다.  

이러한 의미론적 승리와는 별개로, 이제 디자인 분야의 대중성은 다른 분야들을 흡수 및 동화시키고 있을 정도이다. 더 이상 디자인의 범위는 인테리어나 그래픽, 제품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으며, 이제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푸드 디자인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리하여 디자인 사고나 서비스 디자인까지 등장하게 된 오늘날에는 디자인의 최종 산물이 서비스나 사고방식, 절차에까지 이른 상황이다. 이렇게 디자인의 범위는 공정, 유통, 판매, 조직 등을 포괄할 정도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제 디자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별안간 디자인 업계 내부의 논의 역시 차이보다 동질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엇이 디자인이고 무엇이 디자인이 아닌지조차 의견이 모이지 않는 상태였다.  
“이제 디자인은 많은 사회적 과제를 요구 받고 있다.”
요즘은 디자인이 이와 유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디자인은 많은 사회적 과제들을 요구 받고 있으며, 개별화와 세계화를 위한 다수의 도구들 역시 이제 디자인의 영역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에 대한 많은 긍정적 함의들이 이제는 디자인으로 이관되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 비전을 지닌 창의적인 존재, 미적 가치관의 문제를 선도하는 존재는 이제 디자이너들이다.      

디자인의 중추는 창의성이다. 창의성이라는 용어에 이토록 긍정적인 의미가 부여된 적은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창의적이란 얘기는 그저 그런 칭찬으로 여겨질 뿐, 그 이상은 결코 아니었다. 창의성 그 자체만으로는 긍정적 특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질보다는 양, 창조나 재창조보다는 효율성과 조직화를 훨씬 더 강조하던 시대에 창의성이 무슨 목적에 기여할 수 있었겠는가?     
“커져만 가는 디자인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충족될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은 정반대이다. 창의력을 투여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창의성과 혁신은 성장을 위한 새로운 핵심 개념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혁신 작업에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창의력과 혁신의 힘이야말로 우리만의 진정한 차별적 자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더 싼 값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인도는 더 싼 값에 기계를 돌릴 수 있지만, 당분간 우리의 창의력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다. 이전에는 불필요한 여분의 것으로 간주했던 자질에 갑자기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이제는 너무 지나쳐서 비현실적으로 생각될 정도이다. 실질적으로는 모든 디자인 분야가 무방비 상태이다. 사람들은 마음껏 자기 입맛대로 ‘디자인 사상가’나 ‘소셜 디자이너’를 자처하며, 해마다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이 서너 개씩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이 무분별하게 증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디자인의 질은 더 이상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디자인에 대한 기대와 전망은 계속 커져가고 있다. 베이징의 스모그 문제도, 아프가니스탄의 지뢰 문제도, 서구 도시 빈민가의 심각한 사회 문제도 디자인이 전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커져만 가는 디자인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충족될 수 없다. 우리는 디자인 거품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거품이 터지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출처]
designdb.com